로고
NGO

"카카, 여기 왜 왔어?"

탄자니아 이용흥 선교사…청송사과 헤브론농원 대표

조경이 | 기사입력 2024/05/21 [13:21]

"카카, 여기 왜 왔어?"

탄자니아 이용흥 선교사…청송사과 헤브론농원 대표

조경이 | 입력 : 2024/05/21 [13:21]

 

 

  

카카() 여기 왜 왔어?

한국 그렇게 좋던데 여기 왜 왔어?”

 

2009년부터 탄자니아 선교사로 15년째 사역하고 있는 이용흥 선교사를 향한 탄자니아 청년들의 질문이다. 탄자니아에서 현지인들의 자립을 도우면서 복음을 전하기 힘쓰는 이용흥 선교사는 전문적인 기술들을 알려주기 위해 3개월 단기 비자로 탄자니아 청년들을 정기적으로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기술을 배우게 하고 있다. 한국 땅을 처음 밟으며 대도심을 보게 된 이 청년들이 이용흥 선교사에게 한 질문이었다. 한국이 그렇게 좋은데 왜 탄자니아에 와서 고생을 하느냐고.

 

이용흥 선교사는 당시 그 질문에 첫째는 하나님 때문에 왔고, 두 번째는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어라고 했다한국을 오가면서 탄자니아 친구들, 직원들의 마인드가 변하고 삶이 변했다.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고 고백했다.

 

83년생 이용흥 선교사는 어떻게 탄자니아 선교사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을까. 그는 “90년대 후반 고등학교 때 수련회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서원했다선교사를 하겠다고 서원을 했고 당시에는 스포츠선교사를 할 결심으로 체대를 갔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학비를 번다고 세월이 많이 갔다. 2006년 말부터 유소년체육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비를 벌면서 학교에 다녔고, 20098월에 졸업하고 10월에 탄자니아로 나갔다고 설명했다.

 

막상 고등학교 시절 서원을 했지만 그 뜨거웠던 때를 복기하며 약속을 지켜나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역시 온전히 선교사로 살겠다는 결심 이전에 단기 선교를 통해 훈련을 받았다.

 

그는 “2007년부터 동안교회 단기선교팀으로 탄자니아에 첫발을 내딛었다그곳에 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계속 부어주셨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3년 동안 단기선교 훈련을 받아볼테니 재정, 건강, 그리고 비위등 이 세 가지를 부족하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제가 비위가 좀 약한 편이다. 그런데 현지 친구들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그걸 못 맡게 해달라고 했는데 정말 1년에 세 달 씩 탄자니아 단기선교 훈련을 받았는데 냄새를 전혀 맡지 못했고 재정도 건강도 모든 것이 다 좋았다. 당시 교회에서 후원을 따로 해주는 것이 없어서 청년들이 자비량으로 다녀왔데 재정도 다 채워졌다. 20091월까지 그렇게 훈련을 받고 그해 10월 탄자니아 선교사로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용흥 선교사는 탄자니아 땅에 들어가서 3년 동안은 아이들에게 축구 등 스포츠를 가르치며 현지에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현지 교육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한국으로 나와 교육대학원을 다니며 교사 자격증을 따서 다시 탄자니아로 들어갔다.

 

그는 당시엔 초등학교까지만 무상교육이었다친구들이 20, 21살이 됐는데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오니까 갈 곳이 없었다. 돈이 없어서 중,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검정고시반을 만들어서 오후 7시가 되면 아이들을 모아서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4명이 모두 합격을 했고 그 아이들이 지금은 공무원, 임상병리사, 유치원 교사 등으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흥 선교사는 탄자니아에서 사역을 하면서 교회에서 후원을 받는 사역에는 장기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자비량 선교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 시키고, 장학금까지 지원해줘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청송에 있는 아버지의 밭과 농업지도공사에서 빌려주는 밭 등을 활용해 사과를 심기 시작했다.

 

그는 자비량 선교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종목을 생각한게 사과농사였다청송의 특산물이었다. 탄자니아 친구들을 한국에 정기적으로 데리고 와서 채소, 양계 등의 기술을 가르치는데 3개월 동안 머무는 생활비, 탄자니아와 한국에 오가는 경비 등이 있는데 사과농사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사과 팔아서 아프리카 친구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용흥 선교사는 청송사과농장인 헤브론농원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해 탄지니아 선교를 하면서 30여 명의 탄자니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12명의 고아들을 개인 결연 후원자들과 연결시키는데 힘썼다. 또한 비영리단체 하늘빛과 합력하며 바자회를 통해 사과와 사과즙 판매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3개월 단기비자로 와서 같이 예배드리고 성경공부를 하고 그 시기에 맞는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봄이 오는 시즌에 오면 파종하고 씨 붓고 싹 틔워서 밭에 옮겨 심는 일을 한다. 그 이후에 친구들이 들어가면 나머지 일은 저랑 제 후배 한 명이 같이 청송을 오가며 밭일을 한다. 앞으로 채소 농사를 배운 친구들 중에 밭을 일구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탄자니아에서 밭을 사고 농기구를 구비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고, 양계장을 만들고 싶은 애들이 있으면 양계장을 만들어준다든지 부화기를 사준다든지 그런 계획을 하고 있다고 소망을 전했다.

 

 

 

 

탄자니아 선교사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그는 ”2020년에 코로나가 터졌는데 탄자니아 선교사님들이 대부분 다 본국으로 돌아가셨다당시 와이프가 얼른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고 저랑 심하게 싸웠다. 나는 그들의 친구, 가족이라며 있었는데 내 목숨, 내 건강이 위협받는다고 친구들만 두고 나가버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올게 하며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이 친구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저도 코로나에 걸려 3주 동안 너무 아파서 죽을 뻔했지만 이렇게 다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 일을 계기로 친구들이 더 마음을 열어 준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용흥 선교사의 앞으로의 꿈은 무엇일까. 그는 첫째도 둘째도 탄자니아 친구들의 자립과 복음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 친구들이 아프리카 현지 땅에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이들이 자립하면 그 땅의 가족, 친구, 이웃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꿈이다. 이 친구들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했고, 자신의 고향에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다. 현지에서는 무슬림으로 개종하면 오토바이, 3개월 생활비 등을 준다. 아직도 척박한 땅이기 때문에 아프리카 땅은 여전히 복음과 빵이 같이 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 친구들이 이 배움의 과정에 뭔가를 이루고 일자리를 얻고 양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이후에는 복음을 전하는 청년으로 성장하기를 매 순간 기도한다고 전했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