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일어나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는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식탁 위 음식물을 아무렇게나 입에 욱여넣는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턴 필사의 달음박질이 시작된다. 가까스로 만원 버스에 올라타면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과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업무 현장에 도착하면 복잡 미묘한 관계 스트레스가 유독가스처럼 피어오른다. 일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아침은 이토록 불쾌하고 짜증스럽게 시작되곤 한다.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 발행, 유통하는 미디어 회사 ‘비즈업’ 유병온 대표는 바쁜 현대인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아침은 어떤 풍경인가. 당신에게 일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
대다수에게 일이란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하는 무엇’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유 대표는 일이야말로 자기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강조한다. 미루고 피하고 싶은 대상으로만 일을 치부할 게 아니라, 일상에 의미를 더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
그는 골목에서 줄담배를 태우거나 커피를 연료처럼 들이붓는 ‘의식’을 거쳐야만 업무가 가능한 현대인의 루틴을 바꾸고 싶었다. 사람들이 출퇴근 시간을 무의미하게 소진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성장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길 바랐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일에 대한 색다른 접근, 참신한 시각을 더해줄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일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유 대표는 일이 시작되는 ‘아침 9시’에 주목했다.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 동시대 일잘러들의 삶에서 영감을 얻고 동기부여를 받는다면 고인 물 같기만 하던 삶의 질이 확 달라지리라. 그렇게 지식 채널 ‘아홉시’는 차별화된 전문 콘텐츠를 무기로 첫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미디어가 ‘일’이라고 하면 재테크처럼 돈 버는 일, 돈 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일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의 가치에 대해 다루는 미디어를 만들고 싶었지요.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개개인의 삶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기폭제가 되길 바랐습니다.”
기자로 잔뼈가 굵었던 유 대표는 기성 언론이 갖는 문제점을 개선해보겠다는 목표로 창업을 결심했다. 해외 연수를 통해 버즈피드 같은 세계 디지털 미디어 스타트업의 성과를 경험한 그는 2019년, 각 분야의 전문가 필진을 섭외해 ‘아홉시’란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식 전문 채널 ‘아홉시’엔 철학, 심리, 역사 등 인문 분야를 비롯해 음악, 영화, 미술, 웹소설, 그림책에 이르는 다양한 대중예술 컨텐츠가 매일 업로드된다. 전문가들이 생산하는 콘텐츠엔 깊이 있는 통찰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진로 탐색, 취업 준비에 한창인 MZ세대부터 자기 계발에 열심인 중장년층에게 영감을 주는 콘텐츠가 가득하다.
“텍스트 컨텐츠로 유료 독자를 모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온라인에 ‘낚시성’ 기사들이 넘쳐나는 이유지요. 언론으로서의 공적 가치를 고민하다 좋은 콘텐츠만 쓰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이고 싶었습니다. 전문성과 깊이를 담은 ‘아홉시’ 콘텐츠를 통해 대중에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 대표지만 그는 킬링타임용 ‘스낵컬쳐’를 지양한다. 쉽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재미 본위의 콘텐츠보다 삶에 깊이를 더하고 의미를 주는 미디어로 오래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매우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뤄냈어요. 하지만 그에 대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지요. 경제 논리에 지배되는 사회 모습은 그 단적인 폐해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아젠다세팅(의제설정)을 할 때 인문학과 예술이 갖는 가치에 중점을 둡니다. 급성장한 경제력을 뒷받침할 인문학적 소양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지식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이 만족할만한 콘텐츠를 발굴,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지난해부터 유튜브 영상 제작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텍스트 중심의 ‘아홉시’에 다큐멘터리 영상을 가미해 더 다양하고 풍성한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한 것. 유현준 홍익대 교수, 스티브J&요니P 디자이너, 곽윤기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등 유명 인사들을 비롯해 우리나라 최초 조향사, 세계 정상급 기량의 비보이 등 직업적 롤 모델을 보여주는 영상들이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조명하거나 사회문화 현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집중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의미 있는 주제, 뛰어난 영상미가 특징인 다큐 채널로 자리매김하는 게 그의 다음 목표다.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는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데다 한 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확산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유행을 쫓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습니다. 유행은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는 점이지요. 저는 일시적인 트렌드를 쫓기보다 항상성을 갖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나라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처럼 지속적으로 질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제공할 수 있기를 바라죠. 그래서 저를 비롯한 회사 전체가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재미보다 ‘의미’에 방점이 찍힌 콘텐츠를 계속 생산하는 것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 말한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그는 의뢰받은 영상을 제작해주는 프로덕션 일을 병행하고 있다. 더 실험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해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
“일정 정도 이상의 수익을 내지 못하면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일을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요.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우선적으로 안정적 수익 모델을 만들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수익이 나야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사업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은 유 대표는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인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프로듀서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직원에겐 교육비를 지원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는 ‘크리에이티브 아워(Creative Hour)’로 지정해 사무실 밖에서 창의력을 높이는 활동을 하도록 독려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창업가’의 조언
박학다식한 다독가이자 날카로운 필력으로 유명한 그는 학창시절 공부도, 놀기도 모두 열심인 학생이었다. 성적만 좋아서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믿음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것.
“고3 담임 선생님이 저를 참 미워했어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좋은 성적이 나올텐데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선생님께선 ‘대학 가면 실컷 놀 수 있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지금 행복한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입시를 앞둔 순간에도 두 가지 모두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회비용을 따져가며 하나를 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게 옳다고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업과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도 그는 ‘두 마리 토끼’를 쫓을 것을 주문했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 때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부를 할 땐 성적이냐 우정이냐를 놓고 갈등하고, 진로를 택할 땐 내가 좋아하는 학과에 가느냐 돈을 잘 버는 학과에 가느냐를 놓고 고민하지요. 항상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두 가지 모두를 추구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면 좋겠어요. 젊은 친구들에겐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 좀 더 욕심을 부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작권자 ⓒ THE N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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